“이 책, 정말 믿을 수 있나요?”
성경을 펼칠 때 한 번쯤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수천 년 전에 쓰인 책이 어떻게 지금까지 전해졌을까? 베끼고 또 베끼는 동안 내용이 바뀌지는 않았을까? 성경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들이 있다던데, 성경이 그걸 따라 쓴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은 믿음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지하게 믿고 싶기 때문에 생기는 질문이에요. 그리고 반가운 소식은, 이 질문들에 대해 지난 200년 동안 고고학과 사본학이 정말 많은 답을 찾아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에서는 성경이 처음 어떤 재료 위에, 어떤 언어로 기록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구약이 어떻게 보존되었는지, 고대 근동의 유명한 문서들 — 길가메시 서사시, 함무라비 법전, 에누마 엘리시 — 과 비교하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땅속에서 나온 유물들이 성경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신약 사본은 다른 고대 문헌과 비교해 얼마나 풍성한지, 66권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리고 마침내 우리말 성경이 어떻게 우리 손에 왔는지까지 차근차근 따라가 보겠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한 가지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역사적 증거가 성경의 권위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데서 나옵니다(딤후 3:16). 다만 역사는 그 말씀이 공중에 떠 있는 신화가 아니라, 실제 시간과 장소 속에서 주어지고 지켜져 온 말씀이라는 것을 증언해 줍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증언을 듣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무엇 위에, 어떤 말로 쓰였을까
약 1,500년에 걸쳐, 40명이 넘는 저자가, 세 대륙에서, 세 가지 언어로 기록한 책. 성경의 첫 이야기는 ‘글자’와 ‘종이’에서 시작합니다.
모세(BC 15~13세기)부터 요한계시록(AD 90년대)까지
왕, 목자, 제사장, 어부, 세리, 의사, 학자
히브리어 · 아람어 · 코이네 헬라어
구약 39권 + 신약 27권
세 가지 언어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어는 자음만 22개로 이루어진 글자였어요. 모음 없이 자음만 적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문맥과 전통을 따라 소리를 붙여 읽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히브리어 성경의 모음 점은 훨씬 뒤인 중세에 마소라 학자들이 붙인 것이에요.
구약의 일부는 아람어로 쓰였습니다. 다니엘 2:4~7:28, 에스라 4:8~6:18과 7:12~26, 예레미야 10:11 등이 그렇습니다. 아람어는 앗수르·바벨론·페르시아 제국 시대의 국제 공용어였기 때문에, 포로기 전후의 기록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어요. 예수님께서 일상에서 쓰신 말도 아람어였습니다. “달리다굼”(막 5:41), “에바다”(막 7:34), “아바”(막 14:36)가 그 흔적이지요.
신약은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코이네’는 ‘공통의, 평범한’이라는 뜻이에요. 알렉산더 대왕 이후 지중해 세계 전체에서 시장 상인부터 관리까지 모두가 쓰던 생활 헬라어였습니다. 하나님은 철학자들만 읽는 고전 문체가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장의 언어로 복음을 주셨습니다.

다윗·솔로몬 시대부터 포로기 전까지 쓰던 글자. 실로암 비문과 은 두루마리가 이 글자로 쓰였습니다.

네모난 글자 위아래의 작은 점과 선이 중세에 붙인 모음·악센트 부호입니다.

대문자만 쓰고 띄어쓰기 없이 이어 쓴 4세기 신약 사본입니다.
점토판에서 두루마리로, 두루마리에서 책으로
고대 근동에서 글은 주로 점토판에 새겨졌습니다. 젖은 진흙에 갈대 끝으로 쐐기 모양을 눌러 쓰는 설형문자(쐐기문자)였지요. 메소포타미아의 문서들이 지금까지 많이 남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점토판은 불에 타면 오히려 단단하게 구워져서 수천 년을 버텨요.

갈대 끝을 젖은 진흙에 비스듬히 눌러서 생긴 쐐기(▼) 모양 자국이 하나하나 글자를 이룹니다.

초기 문자는 곡식과 가축을 세는 장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크기예요. (대영박물관)

앗수르 왕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나온 토판. 비슷한 낱말을 정리한 고대의 사전입니다.

그림 모양의 글자로, 파피루스에 붓과 잉크로 썼습니다. 『사자의 서』 일부 (루브르)
반면 이스라엘과 이집트에서는 주로 파피루스와 양피지를 썼습니다. 파피루스는 나일강변 갈대 줄기를 얇게 펴서 엮어 만든 종이이고, 양피지는 양이나 염소 가죽을 다듬어 만든 것이에요. 이것들을 길게 이어 붙여 둥글게 만 것이 두루마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펴신 이사야서도 두루마리였지요(눅 4:17).

나일강변에 자라는 키 2~3m의 갈대. 이 줄기로 종이를 만들었고, 영어 paper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줄기 속을 얇게 저며 가로·세로로 겹쳐 놓고 두드려 눌러 말리면 한 장의 종이가 됩니다.

가로세로로 겹친 식물 섬유가 그대로 보입니다. 습기에 약해 오래 남기 어려웠어요.

가죽을 다듬은 양피지 여러 장을 이어 꿰매고, 양 끝 막대에 감아 펼치며 읽습니다.
오배자(벌레혹)와 광물 등을 섞어 오래가는 잉크를 만들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지금도 손으로 토라를 씁니다.
그런데 파피루스와 양피지는 점토판과 달리 습기와 벌레에 약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서는 원본(학자들은 이것을 ‘원본(아우토그라프)’이라고 부릅니다)이 남아 있지 않아요. 대신 성경은 끊임없이 다시 베껴 쓰는 방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뒤에서 이야기할 ‘사본’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1~2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두루마리 대신 낱장을 묶어 접은 코덱스(오늘날 책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반 문학은 대부분 두루마리였는데, 초기 기독교 사본은 거의 다 코덱스였어요. 여러 권을 한데 묶을 수 있고, 원하는 구절을 빨리 찾을 수 있고, 휴대하기 편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고 다니며 전하려는 교회의 열정이 ‘책’이라는 형태를 널리 퍼뜨린 셈이지요.

나무판에 밀랍을 입혀 철필로 쓰던 메모장. 여러 장을 끈으로 묶던 이 형태가 코덱스의 뿌리입니다.

AD 200년경 바울 서신 사본. 낱장을 겹쳐 접어 묶은 초기 코덱스의 모습입니다.

양피지 코덱스 한 면에 세 단으로 쓴 마태복음. 오늘날 책과 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모세 시대에 글자가 있었나요?”
19세기의 일부 비평학자들은 “모세 시대에는 히브리인이 글을 쓸 수 없었으니, 오경은 훨씬 후대의 작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발견들이 이 주장을 무너뜨렸어요. 시내 반도의 광산 지역에서는 BC 18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원시 시나이 문자, 곧 알파벳의 조상이 발견되었고, 이집트에서 발견된 아마르나 서신(BC 14세기)은 당시 가나안 도시 왕들이 이집트 파라오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행 7:22) 자란 사람이었고, 그 시대는 이미 글로 기록하고 보관하는 문화가 활발하던 때였습니다.

시내 반도 광산에서 발견된 알파벳의 조상. 그림처럼 보이지만 각각 하나의 소리를 나타냅니다.

원시 시나이 문자 → 페니키아(고대 히브리) 문자 → 라틴 알파벳으로 이어지는 모양 변화

성경에도 나오는 가나안 도시 게셀의 통치자가 이집트 파라오에게 보낸 쐐기문자 편지입니다.
구약은 어떻게 지켜져 왔을까
원본은 사라졌는데, 어떻게 우리는 구약의 내용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숫자를 세던 서기관들’과 ‘동굴 속 항아리’에 있습니다.
서기관, 말씀을 지킨 사람들
이스라엘에는 말씀을 베껴 쓰는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긴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스 7:6)로 불렸지요. 이들에게 성경을 베끼는 일은 단순한 필사가 아니라 거룩한 예배였어요.
이 전통은 AD 6~10세기에 이르러 마소라 학자들에게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들은 정말 놀라울 만큼 꼼꼼했어요.
글자 수를 셌습니다
각 책의 글자 수, 단어 수, 절 수를 세어 책 끝에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오경의 정확히 한가운데 오는 글자와 단어가 무엇인지까지 표시해 두었어요. 새로 베낀 사본이 이 숫자와 맞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틀린 사본은 폐기했습니다
잘못 베낀 사본은 예배에 쓰지 않고, ‘게니자’라는 보관실에 두었다가 정중하게 묻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적힌 문서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는 경외심 때문이었지요.
모음과 악센트 부호를 붙였습니다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에서 점점 멀어지자, 정확한 발음과 읽는 법이 잊혀지지 않도록 자음 위아래에 모음 점과 낭독 부호를 붙였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본문을 ‘마소라 본문’이라고 부르고, 오늘날 우리 구약 번역의 기초가 됩니다.
마소라 본문을 담은 가장 중요한 사본 두 개가 있습니다. AD 930년경의 알레포 사본, 그리고 AD 1008년에 완성된 레닌그라드 사본입니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완전한’ 히브리어 구약 전서예요. 오늘날 학자들이 쓰는 히브리어 성경 표준판(BHS)이 바로 이 사본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도 천 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1947년 전까지는 이것이 정말 큰 질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구약 사본이 AD 900~1000년경이었는데,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가 BC 430년경에 기록되었으니, 그 사이에 1,300년이 넘는 공백이 있었거든요. “그동안 내용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만했습니다.
그런데 1947년, 사해 서북쪽 쿰란 지역에서 잃어버린 염소를 찾던 베두인 목동이 동굴 안에 돌을 던졌다가,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들어가 보니 항아리 속에 오래된 두루마리들이 들어 있었어요. 이것이 20세기 최대의 고고학 발견이라 불리는 사해 사본(쿰란 사본)의 시작입니다.
이후 1956년까지 모두 11개의 동굴에서 약 900여 개 두루마리(대부분 조각)가 발견되었습니다. 그중 약 4분의 1이 성경 사본이었고, 에스더를 제외한 구약 모든 책의 일부가 들어 있었어요. 기록 연대는 대략 BC 3세기부터 AD 1세기까지입니다.

사해 서북쪽 절벽의 동굴들. 이런 동굴 11곳에서 두루마리가 나왔습니다.

뚜껑 덮인 원통형 항아리 속에 두루마리를 넣어 보관했습니다. (요르단 박물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이사야 대두루마리(1QIsaa)입니다. BC 12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양피지 17장을 이어 붙인 길이 약 7.3m의 두루마리에 이사야 66장 전체가 거의 온전히 담겨 있어요.
학자들이 이 이사야 대두루마리를 천 년 뒤의 마소라 사본과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어요. 차이의 대부분은 철자법(우리말로 치면 ‘하였다/했다’ 같은 차이)이나 명백한 필사 실수였고,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용과 의미는 사실상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3장 166개 단어 가운데 의미상 질문이 될 만한 차이는 한 단어(11절의 ‘빛’) 정도였고, 그마저도 본문의 메시지를 바꾸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된 성경 구절 — 은 두루마리
1979년, 예루살렘 힌놈 골짜기 근처 케테프 힌놈의 무덤에서 손가락만 한 은 두루마리 두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펴는 데만 몇 년이 걸렸는데, 그 안에는 BC 600년경 고대 히브리 문자로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었어요.

손가락만 한 은판에 바늘처럼 가는 도구로 고대 히브리 문자를 새겼습니다.
목에 거는 부적처럼 말려 있던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박물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수기 6:24~26 (제사장의 축복)이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성경 본문입니다. 바벨론 포로 이전, 솔로몬 성전이 아직 서 있던 시대에 이미 민수기의 축복 기도가 사람들의 목에 걸려 있었다는 뜻이지요. 오늘 주일 예배를 마치며 듣는 축도의 뿌리가 2,600년 전 은 조각 위에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칠십인역 — 세상을 향해 열린 구약
BC 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 헬라어가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모세오경부터 시작해 BC 2세기 무렵까지 구약 전체를 헬라어로 번역했는데, 이것이 칠십인역(LXX)입니다. 72명의 학자가 번역했다는 전승에서 이름이 붙었어요.

칠십인역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합니다. 첫째, 마소라 본문보다 천 년 이상 앞선 시기의 히브리어 본문이 어땠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증인입니다. 둘째,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자주 사용한 성경이었어요. 하나님은 복음이 이방 세계로 퍼져 나가기 수백 년 전부터, 이미 세상의 공용어로 된 구약을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문서들과 나란히 놓아 보면
성경은 진공 상태에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가나안 — 강대한 문명들 사이에서 기록되었지요. 그 이웃들의 문서와 비교하면 성경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눈에 보는 연대표
아래 연대표는 각 문서가 처음 기록되었다고 보는 시기와 현재 남아 있는 사본의 시기를 함께 보여 줍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이 장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예요.
“그럼 어떤 문서가 먼저인가요?” — 솔직히 말씀드리면, 현재 손에 쥘 수 있는 실물 사본만 놓고 보면 메소포타미아의 토판들이 성경 사본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길가메시나 함무라비 법전의 토판은 BC 18세기 것도 있지만, 성경의 가장 오래된 조각은 BC 600년경이에요.
하지만 여기서 꼭 짚어야 할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사본이 언제 만들어졌는가’와 ‘내용이 언제 처음 기록되었는가’는 다른 질문입니다. 점토판은 불에 구워지면 수천 년을 가지만, 파피루스와 양피지는 썩기 때문에 성경은 오래된 실물이 남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둘째, 먼저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원본’이고 나중 것은 ‘베낀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일 수도 있지요. 셋째, 아래에서 보겠지만 성경은 이웃 문서들과 비슷한 ‘형식’을 쓰면서도 그 내용과 세계관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베낀 것이라면 이렇게 정면으로 다를 수가 없어요.
① 홍수 이야기 — 길가메시 서사시와 창세기
1872년, 대영박물관에서 일하던 조지 스미스가 니느웨에서 출토된 토판을 해독하다가 깜짝 놀랍니다. 신들이 홍수를 보내기로 하고, 한 사람이 배를 만들어 가족과 짐승을 태우고, 배가 산에 머물자 새를 날려 보내는 이야기가 거기 있었거든요. 이것이 길가메시 서사시의 홍수 이야기입니다. 이 발표는 유럽 전체를 뒤흔들었어요.
이후 더 오래된 아트라하시스 서사시(BC 17세기 사본)와 수메르어 홍수 이야기도 발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이 이야기들을 가져다 쓴 것일까요? 나란히 놓고 보면 비슷한 점도 분명하지만, 다른 점이 훨씬 더 근본적입니다.

BC 1635년경, 바벨론 시파르 출토로 추정. 홍수 이야기를 담은 가장 오래된 토판 중 하나 (대영박물관)

1872년 조지 스미스가 해독해 세상을 놀라게 한 바로 그 토판입니다.
| 비교 항목 | 길가메시 · 아트라하시스 | 창세기 6~9장 |
|---|---|---|
| 홍수의 이유 | 인간이 너무 시끄러워 신들이 잠을 잘 수 없어서(아트라하시스) |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땅이 포악함으로 충만하여(창 6:5,11) |
| 신의 모습 | 여러 신들이 다투고, 홍수에 겁을 먹고 개처럼 웅크림 | 한 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심판하시고 은혜로 보존하심 |
| 구원받은 사람 | 우트나피시팀 — 한 신(에아)이 다른 신들 몰래 정보를 흘려줌 | 노아 —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의인으로 인정받음 |
| 배의 모양 | 가로·세로·높이가 모두 120규빗(약 54m)인 정육면체, 7층 | 길이 300 × 너비 50 × 높이 30규빗(약 135 × 22.5 × 13.5m), 3층 |
| 기간 | 폭풍 6일 밤낮, 7일째 그침 | 40일 비, 150일 물이 넘침, 약 1년 후 땅에서 나옴 |
| 홍수 후 제사 | 굶주린 신들이 제물 냄새를 맡고 “파리처럼” 몰려듦 | 하나님이 향기를 받으시고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세우심(무지개) |
| 결말의 의미 | 우트나피시팀이 신이 되어 영생을 얻음 | 노아는 여전히 사람이며, 생명의 존엄과 새 출발의 명령을 받음(창 9:6) |
특히 배의 모양을 보세요. 정육면체 배는 물 위에서 계속 빙글빙글 돌아서 실제로는 항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반면 방주의 길이:너비:높이 = 30:5:3 비율은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에요. 1990년대 초 한국선박해양연구소(KRISO) 연구팀이 방주의 비율을 여러 다른 비율의 배와 비교 분석했는데, 거친 파도 속에서의 안정성과 구조 강도, 승선감을 함께 고려했을 때 방주의 비율이 최적에 가깝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 세계에는 수백 개의 홍수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뿐 아니라 중국,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에도 있어요.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은 이것을 실제로 있었던 큰 심판 사건에 대한 인류의 공통 기억으로 이해합니다. 여러 문화가 그 기억을 각자의 다신교적 신화로 변형시켰다면, 창세기는 그 사건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은혜라는 참된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라는 거지요.
반면 비평학계의 상당수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기 무렵 메소포타미아 이야기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신앙에 맞게 고쳐 썼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창세기는 이웃의 신화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 신화의 세계관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교정하는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② 창조 이야기 — 에누마 엘리시와 창세기 1장
에누마 엘리시는 바벨론의 창조 서사시입니다. 제목은 첫 구절 “저 위에 있을 때에”라는 뜻이에요. 바벨론의 신년 축제 때 낭독되었는데, 바벨론의 수호신 마르둑이 어떻게 최고신이 되었는지를 노래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태초에 민물의 신 압수와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가 있었고, 그들에게서 여러 신들이 태어납니다. 젊은 신들이 시끄럽게 굴자 신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마르둑이 티아마트를 죽여 그 몸을 조개처럼 둘로 갈라 위쪽은 하늘로, 아래쪽은 땅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반역한 신 킹구를 죽여 그 피로 인간을 만드는데, 그 목적은 신들이 하기 싫은 노동을 대신 시키기 위해서였어요.

| 비교 항목 | 에누마 엘리시 | 창세기 1~2장 |
|---|---|---|
| 창조의 시작 | 신들이 먼저 태어나고, 신들의 전쟁 끝에 세계가 생김 | “태초에 하나님이” — 하나님은 태어나지 않으시고 처음부터 계심 |
| 창조의 방법 | 신의 시체를 갈라서 하늘과 땅을 만듦 | 말씀으로 —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3) |
| 바다·깊음 | 티아마트 — 무서운 혼돈의 여신 | ‘테홈’(깊음, 창 1:2) — 인격 없는 물,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음 |
| 해와 달 | 신으로 숭배됨(태양신 샤마시, 달신 신) | 이름조차 부르지 않고 “큰 광명, 작은 광명”이라 부름 — 그저 피조물일 뿐(창 1:16) |
| 인간의 기원 | 반역한 신의 피로 만들어짐 | 하나님의 형상대로, 흙과 하나님의 생기로(창 1:27; 2:7) |
| 인간의 목적 | 신들의 노동을 대신하는 노예 | 복을 받고, 땅을 다스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창 1:28) |
| 창조의 평가 | 폭력과 투쟁의 결과물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
창세기 1장을 바벨론 사람이 읽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들이 신으로 섬기던 해와 달, 바다, 바다 괴물(창 1:21, ‘큰 바다 짐승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이 말씀 한마디로 만드신 피조물로 나옵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논쟁적(폴레믹) 성격’이라고 불러요. 창세기는 이웃 나라의 신화를 빌려 온 것이 아니라, 그 신화를 향해 “아니다, 참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라고 선포하는 글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차이는 정말 결정적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신의 형상’이라는 표현은 오직 왕에게만 붙이던 칭호였어요. 그런데 창세기는 모든 사람이, 남자와 여자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선언합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라는 것 — 이것이 3,000년 전 고대 세계에서 얼마나 혁명적인 선언이었는지 기억하며 이웃을 바라봅니다.
③ 법 — 함무라비 법전과 모세의 율법
1901년 이란 수사에서 발견된 함무라비 법전은 바벨론 왕 함무라비가 BC 1754년경 반포한 282개 조항의 법전입니다. 모세의 율법보다 수백 년 앞서고, “눈에는 눈”이라는 동해 보복 원칙도 들어 있어서, 한때 “모세의 율법은 함무라비 법전을 베낀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어요. 사실 함무라비 법전보다 300년 이상 앞선 우르남무 법전(BC 2100년경)도 있으니, 고대 근동에는 성문법의 오랜 전통이 있었던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조항 하나하나를 비교해 보면, 형식은 비슷해도 그 안에 흐르는 정신은 전혀 다릅니다.
| 주제 | 함무라비 법전 | 모세의 율법 |
|---|---|---|
| 신분과 법 | 귀족·평민·노예에 따라 처벌이 다름. 귀족의 눈을 상하게 하면 눈으로 갚지만, 평민의 눈이면 은 1미나, 노예의 눈이면 노예 값의 절반만 배상(196·198·199조) |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은”(레 24:22) — 법 앞에 모두 평등 |
| 종의 눈을 다치게 하면 | 주인에게 손해 배상 |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아 줄지며”(출 21:26) — 종에게 자유를 줌 |
| 재산 범죄 | 신전·왕궁의 재산을 훔치면 사형(6조), 배상하지 못하면 사형(8조) | 소는 다섯 배, 양은 네 배로 배상(출 22:1) — 재산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 않음 |
| 연좌제 | 집이 무너져 집주인의 아들이 죽으면, 건축자의 아들을 죽임(230조) |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신 24:16) |
| 도망친 종 | 도망친 노예를 숨겨 주면 사형(16조) | “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신 23:15) |
| 법의 근원 | 왕이 신에게서 권한을 받아 ‘왕이’ 제정한 법 |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게 직접 주신 법 — 왕도 그 아래 있음(신 17:18~20) |
1미나는 은 약 500g입니다. 함무라비 법전 다른 조항에 나오는 일꾼 품삯으로 계산하면 대략 일꾼 한 사람의 5년치 품삯에 해당해요. 오늘날 최저임금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억 원 이상의 큰돈입니다. 큰 배상금 같지만, 같은 상처라도 귀족이었다면 가해자의 눈을 뽑았을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평민의 눈은 ‘돈으로 계산되는 눈’이었다는 뜻이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출 21:24)도 오해가 많은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복수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복을 제한하는 법이에요. 눈 하나를 잃었다고 상대의 목숨을 빼앗거나 가족 전체에게 복수하던 시대에, “피해만큼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정의의 상한선을 그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법의 정신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완성하셨지요(마 5:38~44).
④ 언약의 형식 — 히타이트 조약과 신명기
20세기 중반, 학자들은 신명기의 구조가 히타이트 종주권 조약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종주권 조약이란 큰 나라의 왕(종주)이 작은 나라의 왕(봉신)과 맺는 조약이에요. 히타이트는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있던 제국으로, BC 1400~1200년경 이런 조약 문서를 많이 남겼습니다.

| 조약의 요소 | 히타이트 조약 (BC 14~13세기) | 신명기 |
|---|---|---|
| ① 서언 | “위대한 왕 ○○가 이같이 말하노라” |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1:1~5) |
| ② 역사적 서언 | 종주가 봉신에게 베푼 은혜를 회고 | 출애굽과 광야에서 베푸신 은혜 회고(1:6~4:49) |
| ③ 규정 | 충성의 의무와 세부 조항 | 십계명과 율법의 세부 규정(5~26장) |
| ④ 보관과 낭독 | 조약문을 신전에 두고 정기적으로 낭독 | 법궤 곁에 두고 7년마다 낭독(신 31:9~13, 26) |
| ⑤ 증인 | 양국의 신들을 증인으로 세움 | “하늘과 땅을 불러 증거로 삼노라”(신 30:19) |
| ⑥ 축복과 저주 | 지키면 복, 어기면 저주 | 축복과 저주(27~28장) |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 여섯 요소, 특히 ‘역사적 서언’이 있는 형식은 BC 2천년기 후반, 곧 모세 시대의 히타이트 조약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거예요. 훗날 BC 7세기 앗수르 조약에서는 이 은혜의 회고 부분이 거의 사라지고 위협과 저주가 중심이 됩니다. 이집트학자 케네스 키친 같은 학자들은 이것을 근거로, 신명기의 언약 구조가 모세 시대의 국제 문서 형식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신명기를 BC 7세기 요시야 시대 작품으로 보는 학자들은 앗수르 조약과의 유사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학계 안에서도 토론이 진행 중인 주제예요.)
그런데 여기서 정말 마음을 울리는 차이가 있습니다. 히타이트의 종주는 정복한 나라를 착취하기 위해 조약을 맺었지만, 신명기의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구원하신 뒤에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신 5:6)는 은혜의 선언으로 십계명을 시작하지요. 순종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사랑의 응답입니다.
⑤ 지혜 문학 — 아메네모페의 교훈과 잠언
1923년에 출판된 이집트의 아메네모페의 교훈(BC 13~11세기)은 잠언 22:17~24:22과 표현이 꽤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잠 22:28)나 재물이 독수리처럼 날아간다는 비유(잠 23:5) 같은 것들이에요.

이것은 오히려 성경의 정직함을 보여 줍니다. 잠언은 처음부터 스스로를 “지혜 있는 자의 말씀”(잠 22:17)을 모은 책이라고 소개하고, 아굴이나 르무엘 왕처럼 이스라엘 밖 사람의 말도 포함되어 있다고 밝힙니다(30~31장).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일반 은총의 지혜를 성경이 받아들이되, 그 모든 지혜의 뿌리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잠 1:7)에 둔 것이지요. 참된 지혜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밝혀 준 것이 잠언의 독특함입니다.
땅이 말하기 시작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성경에 나오는 왕들은 대부분 전설일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땅을 파면 팔수록, 돌과 토판이 성경의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내기 시작했어요.
| 유물 | 연대 · 발견 | 무엇을 말해 주나 |
|---|---|---|
| 메르넵타 석비 | BC 1208년경 · 1896년 | 이집트 파라오가 가나안 원정에서 “이스라엘”을 쳤다고 기록 — 이 시기에 이미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하나의 백성으로 있었음 |
| 쿠르크 석비 | BC 853년 · 1861년 |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가 카르카르 전투에서 “이스라엘 사람 아합”이 전차 2,000대를 이끌고 왔다고 기록 |
| 메사 석비 | BC 840년경 · 1868년 |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 왕 오므리와 그 아들에게 지배받다 반란을 일으킴 — 왕하 3:4~5과 같은 사건. ‘여호와’라는 이름의 성경 밖 최초 확실한 언급 |
| 텔단 석비 | BC 9세기 · 1993년 | 아람 왕이 “다윗의 집”(BYTDWD)의 왕을 쳤다고 기록 — 다윗이 전설이 아닌 실존 왕조의 시조였음을 보여 줌 |
| 살만에셀의 흑색 오벨리스크 | BC 841년경 · 1846년 | 이스라엘 왕 예후(혹은 그 사신)가 앗수르 왕 앞에 엎드려 조공하는 모습 — 이스라엘 왕을 묘사한 유일한 동시대 그림 |
| 실로암 터널 비문 | BC 700년경 · 1880년 | 히스기야가 앗수르 침공에 대비해 판 지하 수로(왕하 20:20) 안에서 발견된 공사 완료 기록 |
| 산헤립 프리즘 | BC 690년경 |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다고 자랑 — 그러나 예루살렘을 함락했다는 말은 없음(왕하 19:35~36) |
| 바벨론 연대기 | BC 597년 사건 |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왕을 사로잡아 다른 왕을 세웠다고 기록 — 여호야긴과 시드기야 사건(왕하 24:10~17) |
| 고레스 실린더 | BC 539년 이후 · 1879년 |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포로 된 민족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신전을 재건하게 한 정책 — 스 1:1~4의 배경 |
| 빌라도 비문 | AD 26~36년 · 1961년 | 가이사랴에서 발견된 돌에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 이름이 새겨짐 |
| 가야바 납골함 | AD 1세기 · 1990년 | 예수님을 재판한 대제사장 가야바 가문의 이름이 새겨진 납골함 |

모압 왕 메사의 승전 기록. ‘이스라엘 왕 오므리’와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루브르)

‘다윗의 집’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아람어 비석 조각 (이스라엘 박물관)

살만에셀 3세가 카르카르 전투에서 맞선 ‘이스라엘 사람 아합’을 기록 (대영박물관)

앗수르 왕 앞에 엎드린 이스라엘 왕 예후(혹은 사신) — 이스라엘 왕의 유일한 동시대 모습

히스기야 터널 공사의 마지막 순간, 양쪽에서 파 들어온 일꾼들이 만난 장면을 기록

히스기야를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다고 자랑하는 앗수르 왕의 기록 (대영박물관)

BC 701년 산헤립이 유다 성읍 라기스를 공격한 장면을 새긴 앗수르 궁전 벽화 (대영박물관)

포로 된 민족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 (대영박물관)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새겨진 돌. 가이사랴 현장의 복제품 (원본은 이스라엘 박물관)
예수님을 재판한 대제사장 가야바 가문의 이름이 새겨진 뼈 상자 (이스라엘 박물관)
‘헷 족속’ 이야기
고고학이 성경을 어떻게 다시 보게 했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가 헷 족속(히타이트)입니다. 성경에는 헷 족속이 40번 넘게 등장해요.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하려고 헷 사람 에브론에게 막벨라 굴을 샀고(창 23장), 다윗의 장군 우리아도 헷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19세기까지 성경 밖 어떤 역사서에도 이 민족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헷 족속은 성경이 지어낸 민족”이라고 했어요.
그러다 1906년, 튀르키예 보아즈쾨이에서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가 발굴되었고, 수만 장의 토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성경이 지어냈다던 민족이 사실은 고대 근동의 3대 강국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위에서 본 조약 문서도 바로 여기서 나왔어요.

고고학이 성경의 모든 내용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땅속에서 나오는 것은 극히 일부이고, 출애굽이나 여리고 정복처럼 연대와 해석을 놓고 학자들 사이에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는 주제도 있어요. 하지만 분명한 흐름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이 역사적으로 틀렸다고 여겨졌던 부분들이, 발굴이 진행되면서 오히려 성경의 기록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계속 늘어 왔다는 것이지요. 고고학은 성경이 실제 역사의 무대 위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거듭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약, 고대 세계에서 가장 풍성하게 전해진 책
우리는 플라톤이나 카이사르의 글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책은 얼마나 많은 사본으로, 얼마나 가까운 시기에 전해졌을까요? 신약과 나란히 놓아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숫자로 보는 신약 사본
현재 목록에 오른 헬라어 신약 사본 (조각 포함)
라틴어 사본
시리아어 · 콥트어 · 아르메니아어 등 고대 역본 사본
초대 교부들의 신약 인용 — 이것만으로도 신약 대부분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함
다른 고대 문헌과 비교하면
아래 표는 우리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고대 문헌들이 원본이 쓰인 지 얼마 만의 사본으로, 몇 개나 남아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집계 방식에 따라 숫자는 조금씩 다를 수 있어서 대략적인 수치로 적었습니다.)
| 문헌 | 기록 시기 | 가장 오래된 주요 사본 | 시간 간격 | 사본 수 |
|---|---|---|---|---|
| 플라톤 저작 | BC 4세기 | AD 9세기 | 약 1,200년 | 약 200여 개 |
| 헤로도토스 『역사』 | BC 5세기 | AD 10세기 (완전 사본) | 약 1,350년 | 약 100여 개 |
|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 BC 50년대 | AD 9세기 | 약 900년 | 약 250개 |
| 타키투스 『연대기』 | AD 116년경 | AD 9세기 (1~6권은 단 1개 사본) | 약 750년 | 극소수 |
| 호메로스 『일리아스』 | BC 8세기 | 파피루스 조각 BC 3세기 · 완전 사본 AD 10세기 | 약 500년(조각) | 약 1,900개 |
| 신약성경 | AD 50~100년 | 조각 2세기 초중반 · 거의 완전한 사본 AD 200~350년 | 수십 년 ~ 약 250년 | 헬라어만 5,800개 이상 |
정리하면, 고대 문헌 연구자들이 보통 천 년 가까운 간격의 사본 수십~수백 개로 원문을 연구하는 데 비해, 신약은 원본이 쓰인 지 수십 년에서 이삼백 년 이내의 사본을, 다른 어떤 고대 문헌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 본문학의 대가 브루스 메츠거는 신약이 고대 문헌 가운데 가장 풍부한 사본 증거를 가진 책이라고 평가했어요.
가장 오래된 신약 사본들
P52는 영국 맨체스터 존 라일랜즈 도서관에 있는 작은 파피루스 조각입니다. 가로 6cm, 세로 9cm 정도인데, 한쪽에는 요한복음 18:31~33, 다른 쪽에는 18:37~38이 적혀 있어요. 빌라도가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 묻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토론이 있지만, 보통 2세기 전반에서 중반(AD 125~175년경)으로 봅니다. 요한복음이 AD 90년대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는데, 그 사본이 불과 수십 년 만에 수천 km 떨어진 이집트 시골까지 퍼져 있었다는 뜻이에요. 앞뒤 양면에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두루마리가 아니라 코덱스(책)의 한 장이었습니다.
이외에도 바울 서신을 담은 P46(AD 200년경), 요한복음의 대부분이 담긴 P66(AD 200년경),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담은 P75(AD 175~225년경) 같은 파피루스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4세기에는 신약 전체를 담은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 같은 대형 양피지 사본이 등장해요. 시내산 사본은 1844년과 1859년 독일 학자 티셴도르프가 시내산 성 캐서린 수도원에서 발견했습니다.

바울 서신을 담은 파피루스 코덱스. 사진은 고린도후서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대부분이 남아 있는 파피루스 사본 (스위스 보드머 도서관)

구약과 신약 대부분이 담긴 양피지 대형 사본 (바티칸 도서관)
“사본마다 차이가 수십만 개라던데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보셨을 수도 있어요. 숫자만 들으면 무섭게 느껴지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본이 많을수록 ‘차이의 숫자’도 커집니다
5,800개 사본에서 한 단어의 철자가 다르면, 그 사본 수만큼 차이로 셉니다. 사본이 많다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 원문을 찾아낼 수 있는 증거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에요.
대부분은 철자와 어순입니다
전체 차이의 대다수는 철자법, 어순(헬라어는 어순을 바꿔도 뜻이 같음), ‘예수’와 ‘주 예수’처럼 의미에 영향이 없는 차이입니다. 번역하면 아예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의미 있는 차이는 극히 일부이고,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뜻에 영향을 주면서 원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경우는 전체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가복음 16:9~20과 요한복음 7:53~8:11인데, 우리 개역개정 성경에도 괄호나 난외주로 솔직하게 표시되어 있어요.
어떤 핵심 교리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신성, 십자가와 부활, 이신칭의 같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 가운데 본문 차이 때문에 흔들리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핵심 교리는 본문 차이가 없는 여러 구절에서 거듭 확인됩니다.
왜 66권일까 — 정경의 형성
‘정경(正經, Canon)’이란 헬라어 ‘카논’, 곧 ‘곧은 갈대, 잣대’에서 온 말입니다. 신앙과 삶을 재는 하나님의 잣대가 되는 책들이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그 목록은 누가, 어떻게 정했을까요?
교회가 정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고 있던 책들을 교회가 ‘알아보고 인정한’ 것입니다. 공의회는 새로운 권위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들이 오랫동안 말씀으로 받아 읽어 오던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을 뿐이에요. 마치 의사가 건강한 사람에게 ‘건강하다’는 진단서를 써 주는 것과 같습니다. 진단서가 건강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요.
구약 정경 — 예수님께서 인정하신 성경
유대인들은 구약을 율법(토라)·선지서(느비임)·성문서(케투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첫 글자를 따서 ‘타낙’이라 불렀습니다. 유대인의 구약은 24권으로 세지만, 우리 구약 39권과 내용은 똑같아요.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 상하를 각각 한 권으로 세고, 12소선지서를 한 권으로, 에스라-느헤미야를 한 권으로 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눅 24:44)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이 세 부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또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마 23:35)라고 하셨는데, 히브리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해 역대하로 끝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뜻으로 구약 전체를 아우르신 것이에요.
AD 90년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유대인들이 신적 권위를 인정하는 책이 22권(24권을 다르게 센 것)으로 정해져 있으며,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 이후의 책들은 같은 신뢰를 받지 못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외경은 왜 빠졌을까
칠십인역에는 토빗, 유딧, 마카비서, 지혜서, 집회서 등 히브리 성경에 없는 책들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외경(아포크리파)이라고 해요. 4세기 말 라틴어 성경을 번역한 제롬은 이 책들을 정경과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고, 종교개혁자들도 히브리 정경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반면 가톨릭은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 책들을 ‘제2정경’으로 공식 인정했어요.
개신교가 외경을 정경에 넣지 않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유대인들 스스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과 사도들이 한 번도 ‘기록되었으되’라며 권위 있게 인용하지 않았으며, 마카비서처럼 스스로 “선지자가 없는 시대”(마카비상 9:27)에 기록되었다고 밝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외경은 신구약 중간 시대의 역사와 유대 사상을 이해하는 데는 유익한 자료예요.
신약 정경 — 교회가 읽어 온 책들
신약의 책들은 기록되자마자 교회들 사이에서 회람되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편지를 다른 교회와 돌려 읽으라고 했고(골 4:16), 베드로는 이미 바울의 편지를 “다른 성경”과 나란히 놓았어요(벧후 3:15~16). 정경 목록이 정리되어 간 과정을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교회가 정경을 알아본 기준
| 기준 | 내용 |
|---|---|
| 사도성 | 사도나 사도와 가까운 사람(마가, 누가 등)이 기록했는가? |
| 정통성 | 사도들이 전한 신앙의 규범, 이미 받아들인 성경과 일치하는가? |
| 보편성 | 특정 지역이 아니라 온 교회가 널리 예배에서 읽어 왔는가? |
| 영감성 | 그 책을 통해 성령께서 교회를 가르치고 변화시키시는 능력이 드러나는가? |
이렇게 보면 정경은 몇몇 지도자가 회의실에서 갑자기 정한 것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온 교회가 예배 속에서 읽고, 듣고, 순종하며 확인해 온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2세기 이후 나온 ‘도마복음’ 같은 문서들은 사도 시대보다 훨씬 뒤에 기록되었고, 영지주의 사상이 섞여 있어서 교회가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번역 — 말씀이 모든 민족의 말로
성경의 역사는 번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민족이 자기 언어로 말씀을 듣기를 원하셨어요(행 2:8). 그리고 그 길에는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대에서 종교개혁까지
| 시기 | 번역 | 의미 |
|---|---|---|
| BC 3~2세기 | 칠십인역 (헬라어) | 최초의 성경 번역, 초대교회의 구약 |
| 2세기~ | 시리아어 페시타, 고대 라틴어 역본, 콥트어 역본 | 복음이 동방·서방·이집트로 퍼짐 |
| AD 405년 | 제롬의 라틴어 불가타 | 천 년 넘게 서방 교회의 표준 성경. ‘불가타’는 ‘대중적인’이라는 뜻 |
| 1382년 | 위클리프 영어 성경 | 라틴어에서 영어로 손으로 베낀 최초의 영어 성경 전서. 위클리프는 죽은 뒤 무덤이 파헤쳐져 유골이 불태워짐 |
| 1455년경 | 구텐베르크 42행 성경 | 금속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주요 책. 성경 보급의 혁명 |
| 1516년 | 에라스무스 헬라어 신약 | 최초로 출판된 헬라어 신약 원문. 종교개혁 번역들의 기초 |
| 1522년 | 루터의 독일어 신약 (‘9월 성경’) |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지내며 11주 만에 번역. 1534년 신구약 전서 |
| 1526년 | 틴데일 영어 신약 | 헬라어 원문에서 번역해 인쇄한 최초의 영어 신약. 틴데일은 1536년 화형당하며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라고 기도 |
| 1611년 | 킹제임스 성경 | 틴데일 번역의 상당 부분을 이어받아, 영어권에서 수백 년간 가장 사랑받은 성경 |

라틴어 성경 불가타를 완성한 제롬(히에로니무스)을 그린 중세 사본 그림

손으로 베껴 쓴 영어 성경의 요한복음 첫 부분
최초로 출판된 헬라어 신약. 루터와 틴데일 번역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독일어 신구약 전서의 창조 장면 목판화

헬라어 원문에서 영어 신약을 번역하고 1536년 화형당한 번역자

헬라어 원문에서 번역해 인쇄한 최초의 영어 신약

영어권에서 수백 년 동안 가장 널리 읽힌 성경의 표지
틴데일이 했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평신도에게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하던 한 성직자에게,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지켜 주신다면, 머지않아 밭 가는 소년이 당신보다 성경을 더 잘 알게 만들겠소.” 오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성경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들이 목숨으로 지켜 낸 자유 덕분입니다.
우리말 성경이 오기까지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 역사에서도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한글 성경이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존 로스 번역팀의 최초 한글 신약 전서. 옛 한글 표기가 그대로 보입니다.

구약까지 포함해 처음 완역된 한글 성경 전서

한국인 스스로 세운 첫 개신교 교회로 알려진 황해도 소래교회
서상륜은 번역한 성경을 몰래 품에 숨겨 압록강을 건너 고향 황해도 소래로 돌아가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서 1884년경 한국인 스스로 세운 첫 개신교 교회로 알려진 소래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선교사가 오기도 전에, 말씀이 먼저 이 땅에 들어와 교회를 세운 것이지요. 그리고 성경이 쉬운 한글로 번역되면서, 한자를 모르던 여성과 평민들도 처음으로 스스로 글을 읽고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한글 성경은 한국 사회의 문맹을 깨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어요.
지금 내 손에 들린 한글 성경 한 권에, 이 땅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강을 건너고 목숨을 내놓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더 귀하게 펼쳐 봅니다.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들
성경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꼭 나오는 질문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눌러서 펼쳐 보세요.
Q. 길가메시가 창세기보다 먼저 쓰였다면, 성경이 베낀 것 아닌가요?
현존 토판이 더 오래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먼저 기록되었다’는 것과 ‘베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홍수 전승은 전 세계 수백 개 문화에 남아 있어서, 실제 사건에 대한 공통 기억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창세기는 신관, 홍수의 이유, 인간관, 결말에서 길가메시와 정반대의 세계관을 보여 줍니다. 베낀 글이라면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를 수 없지요. 창세기는 이웃의 신화를 교정하는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Q. 수천 년 동안 손으로 베꼈는데, 내용이 바뀌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하나요?
구약은 사해 사본이 그 답을 주었습니다. BC 125년경의 이사야 사본과 천 년 뒤의 마소라 사본이 내용상 거의 같았어요. 신약은 사본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사본들을 서로 비교하면 어디서 필사 실수가 생겼는지 추적해서 원문을 매우 높은 정확도로 복원할 수 있습니다. 증인이 많을수록 진실을 찾기 쉬운 것과 같은 원리예요.
Q. 성경 목록은 4세기 교회 회의에서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 아닌가요?
공의회는 새로 목록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2세기부터 교회들이 예배에서 읽어 오던 책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 대부분은 2세기 초부터 이미 성경으로 인용되고 있었어요. 4세기까지 논의된 것은 요한계시록,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같은 몇몇 책의 문제였고, 그것도 위조 여부를 신중하게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Q. 사본마다 차이가 있다면, 원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아닌가요?
차이의 대부분은 철자와 어순처럼 의미에 영향이 없는 것들이고, 의미에 영향을 주는 차이는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도 학자들이 다양한 사본을 비교해 원문을 상당히 확실하게 판별할 수 있고, 판단이 어려운 경우는 우리 성경에 난외주로 정직하게 표시되어 있어요. 기독교의 어떤 핵심 교리도 본문 차이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Q. 고고학이 성경을 다 증명했나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과장입니다. 고고학은 땅속에 남은 극히 일부만 보여 줄 수 있고, 해석도 학자마다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헷 족속, 다윗 왕조, 오므리와 아합, 히스기야, 빌라도처럼 한때 의심받던 이름들이 하나씩 확인되어 온 흐름은 분명합니다. 고고학은 성경이 실제 역사와 지리 속에서 기록되었음을 거듭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는 궁극적으로 고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근거합니다.
Q. 원본이 없는데, 왜 ‘원본은 무오하다’고 말하나요?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것은 원본이고, 사본과 번역은 그 원본을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것처럼 사본들이 매우 풍부하고 정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원본의 내용을 높은 신뢰도로 알 수 있어요. 마치 원본 서류는 금고에 없어도, 수천 장의 정확한 사본을 비교해 그 내용을 확실히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는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를 가집니다.
그 말씀이 오늘 내 손에
점토판에 쐐기를 새기던 시대, 갈대 펜으로 파피루스에 글을 적던 서기관, 한 글자도 틀리지 않으려 글자 수를 세던 마소라 학자들, 동굴 속 항아리에 두루마리를 숨긴 사람들, 화형대 위에서 기도하던 틴데일, 성경을 품에 숨겨 압록강을 건넌 서상륜.
그 긴 시간과 수많은 손을 거쳐
지금 그 말씀이 내 손에 있습니다.
역사는 성경이 우연히 살아남은 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제국들은 무너지고 그들의 신화는 박물관 유리 상자 속에 잠들었지만, 성경은 지금도 수천 개 언어로 읽히며 사람들을 살리고 있어요. 그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자기 말씀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이 말씀이 이렇게 지켜져 왔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얼마나 읽고, 얼마나 믿고, 얼마나 따르고 있는가. 오늘 성경을 펼쳐 한 장이라도 천천히 읽어 봅니다.